좋은 그림책은 두 번 읽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서 한 번, 부모가 되어서 자녀에게 읽어주기 위해 또 한 번. 두 번뿐이겠습니까. 읽을수록 이전에 읽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새록새록 발견하게 되는 게 그림책입니다. 그러나 그림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은 그림책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지요. 그림책이야말로 0세부터 100세까지 누구나 읽고 사랑하게 되는 책입니다. 어렵지 않고, 한 권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으며, 더운 날 차가운 샘물 한 잔처럼 청량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그림책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세상을 쫓기듯 살아내느라 수고한 어른들에게 어쩌면 더 필요한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에 치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지나온 시간들, 이제야 스스로 돌아보며 자신을 보듬고 싶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그림책 한 권 권합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낯선 사람 같다고 느껴질 때, 혹은 누군가를 기다릴 때, 짧지만 가볍지 않은 읽을거리, 그림책 한 권 하시지요.

 

지금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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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 문학동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케이크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라고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고, 군대에 가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아이가 어서 자라나길 기다립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차례 지나는 동안 자라난 아이들, 그들이 떠난 빈방의 문을 열며 허전한 마음에 아이들의 안부 전화를 기다립니다.

 

영원할 것 같던 평화로운 기다림도 행복을 시샘하는 이의 훼방으로 깨지고 맙니다. 기다림을 함께 해온 배우자가 그의 곁을 떠나고, 겨울이 어서 가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기다림은 책 표지의 빨간 끈처럼 헝클어지고 끊어질 듯 위태로울 때도 있었지만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빨간 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가닿게 되지요. 단숨에 다다른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마른침을 삼키게 합니다.

 

끈에 구속되지 않고자 했으며,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이어 오고 이어갈 끈,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기쁘고 가슴 아프고 마음 졸이던 순간을 넘어서 당도한 지금 여기,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는지요? 기다림엔 끝이 없다지요. 기다릴 대상이 있는지요? 아직도 기다리는 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100만 번이나 다시 살아도 사랑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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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 비룡소)

 

여기 100만 번이나 다시 산 고양이가 있습니다. 멋진 털을 가진 푸른 눈의 고양이. 그는 어쩌자고 100만 번씩이나 다시 살았을까요? 거듭해서 다시 산 고양이는 사연도 많아서 임금님의 고양이로도 살고, 뱃사람의 고양이로도 살고,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로도 살고, 예쁜 여자아이의 고양이로도 살았습니다. 고양이가 죽었을 때 임금님은 전쟁터에서 돌아왔고, 뱃사람은 고기잡이도 잊은 채 엉엉 울었습니다. 모두들 고양이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절절히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고양이는 다시 또 태어났습니다. 이번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길고양이, 도둑고양이로 태어났지요. 여전히 멋진 털, 푸른 눈의 고양이를 모두들 좋아했지만, 그는 시큰둥했지요. 어느 날 그의 눈에 흰 고양이가 들어옵니다. 흰 고양이를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합니다. 세월이 흘러 흰 고양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자신을 사랑했던 그 누구보다 더 슬프게 목놓아 울었습니다. 흰 고양이가 죽은 뒤 마지막으로 100만 번을 울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다시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지난여름 저는 우연한 계기로 저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짧지만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했던 경험입니다. 글을 마무리할 때 남은 생각은 기왕이면 한 생애를 전력을 다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려면 어떻게 살았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 보기도 했습니다. ‘100만 번 산 고양이’를 통해 작가는 누군가를 남김없이 사랑하는 일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무언가 소망하고 바라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너무나 절실해서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무슨 일엔가 깊이 빠져본 적이 있었는지요?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온 밤을 밝히며 열정을 불사른 일이 있었는지요? 저는 자꾸 무엇을 한 적이 있었는지 과거를 묻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은 해 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요. 있다면 더는 망설이지 마시길. 

 

그곳에 변함없이 잘 계시는지요?

몇 년 전 독서모임에서 <끝난 사람>(우치다테 마키코)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머릿속을 해킹당한 것처럼 이야기가 생생해서 당혹스러웠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책은 한동안 유행했던 ‘회사형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소속이 없는 허전함은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하는 무서운 것으로, 회사가 있어야 자기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회사 없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회사형 인간이라고 한다지요.

 

그림책 <오늘은 아빠의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의 주인공도 회사형 인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림책은 주인공이 은퇴하는 날부터 시작됩니다. 간단한 서류상자를 든 주인공의 마지막 퇴근길에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비를 맞는 아빠에게 우산도 안 쓰고, 지청구하듯 걱정하며 작은 우산을 아빠와 함께 씁니다.

 

“괜찮아!” 아빠는 우산을 사양합니다. 괜찮다는 아빠를, 딸은 당연한 듯도 하게 받아들입니다. 아빠는 늘 그렇듯 바람막이 병풍처럼 서 계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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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아빠의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 (윤여준 | 모래알)

 

한동안 아빠는 화분에 물도 주고, 친구와 통화도 하며, 모처럼 맞은 여유를 누리시는 것 같았지요. 그러나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계절이 바뀌면서 아빠는 말수가 줄고 어깨가 처진 듯해 보입니다. 거실 탁자 위에 쓰다만 이력서가 보이는 날도 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가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빠는 이력서에 적힌 내용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깨닫지요. 과거의 영광과 싸워서 이길 장수가 없다는 걸. 아빠는 더욱 의기소침해집니다.

 

하지만 딸은 아직 아빠의 그런 일상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하지만, 문 닫고 들어가면서, 문 열고 나가면서, 출근과 퇴근을 알리는 보고처럼 건조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보는 아빠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지요. 다 괜찮은 줄로만 알았지요.

 

딸은, 아빠가 평생을 가족에 헌신하며 사셨으니 퇴직 후 여유롭고 한가로운 날들을 지낼 만하다고 생각했고, 출근하는 딸의 뒤에 배경처럼 서서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하는 것으로 퇴직한 아빠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요.

 

어느 날 딸은 아빠가 비에 젖은 채 서 있는 꿈을 꿉니다. 1년 전 아빠가 퇴직하던 날, 내리는 비쯤은 대수롭지 않다며 딸의 작은 우산을 외면하던 아빠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도 건너뛰며 늘 시간에 쫓겨 출근 준비를 하던 딸이 말합니다. “오늘은 아침 먹고 출근할게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처럼 딸은 아빠의 안부를 묻기로 한 거지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남들 앞에 내밀 번듯한 명함이 사라지는 것을 사람들은 무척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명함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명함은 또 하나의 나였으며 나를 상징하던 정체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명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일처럼 여겨지겠지요. 나를 상징하는 것, 갑옷처럼 자신을 지켜 온 직함이 적힌 명함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소중한 사람에 무심했던 일상을 토닥토닥 어루만져주는 책입니다. 소중한 이의 안부를 마지막으로 물었던 것이 언제였는지요? 오늘은 나도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곳에 변함없이 잘 계시는지요?

 

다시 새롭게 시작된 낡은 타이어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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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타이어의 두 번째 여행> (자웨이 글, 주청량 그림 | 노란상상)

 

자동차와 함께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타이어가 있었지요. 자동차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갔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한 날도 있고 흙탕물에 젖는 날도 있었습니다. 타이어와 자동차는 길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자동차와 함께 타이어도 닳고 낡아졌습니다. 더는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자동차가 멈춰 섰을 때 타이어도 같이 멈춰 섭니다.

 

타이어는 그대로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여행, 자신만의 여행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굴러가면서 동물들을 놀라게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행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며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지요. 누워서 쉬면서 모처럼 파란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타이어보다 크게 자란 풀들이 하늘을 가렸습니다.

 

이젠 정말 끝인가보다 절망스러웠을 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타이어에게 또 다른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들쥐들이었습니다. 들쥐들은 타이어 위를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다니, 타이어는 상상도 못 한 일에 그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비가 오자 들쥐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타이어는 다시 홀로 남았습니다. 가운데 고인 물에 떠가는 구름을 비추며 이제 정말 끝인가보다 생각할 때 청개구리 한 마리가 타이어 품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타이어가 누군가의 놀이터가 되고 삶터가 되기도 하는 동안 겨울이 옵니다. 겨울이 오자 낡은 타이어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릴 때 타이어도 눈 속에 파묻힙니다. 작은 친구들은 뭘 하고 있을까, 타이어는 지나간 행복한 순간들을 떠 올리며 추억에 잠기고는 했지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어떤 소리가 타이어를 깨웁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겁니다. 타이어의 품 안에 수많은 새싹이 돋아나더니 알록달록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세상은 점점 잊혀가고 있었지요. 대신 이곳에서 지금 무척 행복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아니면 혼자는 움직일 수 없었던 타이어, 우리도 그런 순간이 있지요.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여야 서로의 역할을 할 수 있기에 함께여야 했던 때도 있고. 낡은 타이어가 가던 길을 멈춘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은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퇴직일 수도 있을 거예요. 돌아보면 제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한세상을 풍미했을 테지만, 타이어처럼 하나의 소임을 다한 것이지요. 그러나 늘상 해 오던 일이어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일을 그만두었을 때의 낯섦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적응하기 힘듭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이 책은 하나의 삶을 완료하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 꽃을 가득 피운 타이어처럼, 자신이 살아온 하나의 삶의 사이클이 완료되고 또 다른 역할로 삶을 열어가기를 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0+시민기자단 김영문 기자 (aidiow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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