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학교) 조선을 여행하며 힐링하다(4강)

- 강사 임정수 -

 

    강사님이 수강자들의 오시는 길에 비가 내려 약간의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가물었던 날들에 내린 금비라며 환한 얼굴로 서로를 반기신다.

차를 준비하신 강사님! 간식을 가져오신 수강자들! 강의실에 훈훈한 정감이 흐른다.

조선을 여행하며 힐링하다~  특별한 수업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강사님을 따라 화면 속 조선의 궁궐에 들어선다.

 

오늘은 4회차 강의로 조선시대 왕비의 삶이 주제이다.

교태전을 소개하며 강의가 시작된다.

교태전은 왕과 왕비 두분이 사귀셔서 태평한 세상을 펼칠 훌륭한 세자를 생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왕비의 첫째 직무가 왕가의 가업을 있기 위한 왕자를 생산 하는 것이라니 책임감과 함께 얼마나 부담이 되었는지 상상이 된다.

 

 

 

 

 

 

 

또 왕비의 후원인 아미산과 달이 담긴 호수를 상징하는 작은 연못 함월지의 설명을 들으며 궁궐에서의 억눌림과 답답함을 이 아름다운 산과 연못을 보며 마음을 달랬으리라~   
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인 왕비가 궁궐 안에서 외롭고 힘들때마다 그나마 위안을 받았을 곳인것 같다.
 

 

승정원 일기를 보면  왕의 일상이 투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늘 왕은 어디에 있었는가? 와 같이 

왕은 공부 등 여러 가지가 뛰어나야 하기에 직무와 일상이  빈틈없이 짜여있어 모든 면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음을 본다.

 

 

  
조선시대의 관습으로 일부일처(妻)제와 첩(妾)의 합법화가 되었던 시기여서 당시 여자는 재물이었다.

 

첩이 간판이었고 과시욕의 하나였다.

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거느릴 재력이 있다는 뜻이 있다.

 

 

 
     왕의 여인들을 보면 대비의 권세가 막강해 옥새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당시에도 왕실이나 사대부에서 여인들의 위상이 아주 낮은 것만은 아니였음을 본다.

 

왕실에서 세자빈 후보를 간택할 때 최종 간택에서 떨어진 처자는 시집을 가기 어려웠다고 하니 후보에만 올라도 스타가 되는 요즘과는 너무나 달랐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한 면목을 본다.

 

또한 왕비의 외모를 서양인이 기록한 자료에 의하면  명성왕후의 외모가 40을 넘겼으나 20대 같았고, 피부는 희고 투명하였다. 대화를 나눌 때 지성미로 눈부셨으며 우아하고 고상한 태도를 지녔다고 표현 하였다.

조선시대 여인이지만 현대에서도 모든 여인들의 희망인 미인의 조건을 갖추었나 보다.

 

 

또하나 왕실의 화려한 몸 단장 중 가체는 비싼 장식품으로 1개에 논이 5마지기 값으로 노비 1명의 몸값과 같았다고 한다.

이러한 가체가 점차 부녀자들의 사치품으로 널리 유행하였는데 너무 큰 가체로 일어서다가 목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치가 극에 달하자 영조32년에 가체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왕과 왕비의 합궁을 보면 왕의 침실에는 위험에 대비하여 기물들이 거의 없고 왕과 왕비의 동침시 궁녀들이 문을 사이에 두고 방 밖에서 듣고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조선 후기 정비소생의 자식이 적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  

 

또 왕의 합방금기법이 있었는데 대단히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신혼부부에게도  좋은 정보인 것 같다.

 

 

 

  끝으로 청와대 영빈관 밖 서쪽에 있는 칠궁을 아시나요?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7명의 후궁 신위를 모신 사당 이름이다.

이 강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청와대 개방시 칠궁을 연계해서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글과 사진 : 모더레이터: 고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