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주(惜呑酒)?

원자력과 탈 탄소가 에너지와 기후환경 대처에 화두로 떠오르는 작금의 현실에서 ‘폭탄주’도 아닌 뜬금없는 ‘석탄주!’, 너의 정체는 또 뭐냐?

저 깊은 땅 밑에서 온종일 석탄을 채굴하다 해질녘, 연탄불 판 위에 삼겹살 구이로 시름을 달래보는 광부들의 한 순배 술잔의 또 다른 이름이런가?

이런 무식의 다발성 같으니, 그 맛이 달고 오묘해 ‘아낄 석(惜)’, ‘삼킬 탄(呑)’, ‘술 주(酒)’, 풀이 그대로 ‘원-샷’의 시대에 차마 입에 머금고 삼키기 아깝다고 하여 붙여진 전통주 이름이다.

석탄주는 「임원경제지」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재야 지식인이었던 위관 이용기(韋觀 李用基)선생이 정리한 한국 전통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등에도 ‘성탄향’과 ‘석탄향’등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상당히 대중적인 전통주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50플러스, 술도가 변신은 무죄

장마 빗속 강동 50플러스센터 401호 강의실은 반죽과 누룩 향이 날씨와 어울린 조촐한 술도가였다.

한강 변 옛 지명을 살린 ‘갯모루양조’에서 아들과 함께 전통주를 빚는 김도연 장인은 기다림의 미학인 전통주 빚음 절차를 2시간 교육 시간에 맞게 가지런히 세팅해 간단한 이론소개에 이어 곧 실습에 들어갔다.

아들 이선종 씨는 불혹을 앞둔 나이를 의심할 정도로 풋풋한 기운으로 조교 겸 탁월한 실습 도우미로 어머니와 함께 전통주 빚음의 ‘한석봉’ 데자뷔(deja vu)다. 그는 우리 전통에 현대적 이론과 레시피를 접목하기 위해 가양주 연구소와 국세청 등에서 진행한 일련의 교육과 실기도 마스터했다고 한다.

침대가 과학이 되는 세상에서는 스포츠나 전통주도 이제는 과학이다.

그래서 50플러스들은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뭔가 부족한 그 무엇을 찾아 모여들었다. 그 열망처럼 그들은 몸에 밴 질문도 많고 사설도 길고 반응도 넘쳐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의 치열한 실습장이었다.

올해로 공식 ‘지공거사’ 반열에 접어든 서광수 씨(65) 역시 어릴 때 시골집 기억을 떠 올릴 때면 꼭 장맛이 좋은 집이 생각났다고 한다. 적극적인 실습자로 그는 메주도 된장도 막걸리 맛도 유달리 남달랐던 그 집의 정체를 집 주변을 감도는 유익균(有益菌), 발효에 이로움을 주는 살아있는 균, 프로바이오틱(probiotic)으로 봤단다.

서양의 포도주나 커피 등이 만들어지는 토양 등 자연환경을 테루아르(terroir)로 치는데 독특한 향미를 북돋는 땅의 기운에 바람, 햇살, 기온이 가미했다면 우리 전통주는 그것을 아우르는 땀과 인내, 기다림의 정성을 담았다. 그래서 백세(百洗, 백 번 씻음)한 전통주는 청결을 넘어 100세를 지향한다.

전통주에서 인생의 맛을 보다

전통주를 빗는 과정에는 작은 일생이 숨어 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가르침대로 전통주를 빚는 효소와 효모도 떨어져 그대로 있음은 부패다. 그러나 그 부패한 물질이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몸에 이로울 때 전혀 다른 상태의 에너지를 얻는 작용에 이르는데 그것을 ‘발효(醱酵)’라고 한다.

또한 전통주의 맛을 음미하노라면 그곳에는 인생의 오묘한 맛이 깃들었다.

감(甘ㆍ단맛), 고(苦ㆍ쓴맛), 산(酸ㆍ신맛), 신(辛ㆍ청량감), 삽(澁ㆍ걸쭉한 맛)으로 빚어낸 맛은 마치 인간사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에 근심(憂)·놀람(驚)·두려움(恐)이랄까?

날마다 부패한 죄악을 벗고 시간과 기다림 속에서 빚어지는 우리 술, 그래서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그럴 때는 강동 <사람품학교>에서 빚은 석탄주(惜呑酒) 한 잔으로 아주 먼 데서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음미하노니 차마 그 술이 목을 넘기랴!

홍보서포터즈 황용필(yp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