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제가 다니고 있는 수업이 정말 좋은데, 혹시 원하시면 알려드릴까요?”
‘작가도전교실’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건 낯선 이의 호의 때문이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있었던 글 수업에서 처음 본, 웃는 모습이 싱그러웠던 누군가. 그녀는 강사님의 주문대로, 지난 여행의 한 추억을 꺼내어 그림으로 그리고는 그에 어울리는 몇 문단의 글을 적었다. 커리큘럼이 미리 제공된 것은 아니었다. 강사님의 말이 떨어지고부터 20~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짧은 시간 동안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훌륭해서 그녀의 노트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거두질 못했던 기억이 난다. 두 시간 남짓의 만남 동안 그녀와 나 사이 제공된 정보라고는 지난날의 잊을 수 없던 여행. 그리고 그 여운에 대해 글로 남기고 싶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도,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몸 어딘가에 티가 나는 것은 아니었을까. 눈빛 혹은 연필을 잡아 쥔 손…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연락처를 주고받을 이유가 충분했다.
짧은 만남. 그리고 해를 넘긴 기다림이었다. 작년 겨울에 보여주었던 그녀의 호의대로 나는 무사히 영등포50플러스센터 작가도전교실 수업에 이름을 올렸다. 선생님 강의가 너무 훌륭해서 인기가 많다는 말을 들은 터였기에, 수업 신청하는 나의 손놀림은 대학 시절 인기 강의를 클릭했던 속도를 기억해내야만 했다. 전날 내린 폭설이 녹기 시작했던 강의 첫날은 잊을 수가 없다. ‘영등포50플러스센터’를 ‘영등포플러스센터’로 혼동하는 바람에 지척에 둔 센터를 한 시간가량 돌아가며 슬러시 같은 눈길을 헤맸던 날이다. 빙수로 녹아버린 눈덩이에 빠지기를 반복한 발의 끄트머리가 얼얼해지더니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참 신기하게 몸 어딘가의 감각이 무뎌질수록 도리어 정신은 또렷해졌다. 잊고 있던, 글에 대한 열정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얼어붙은 발을 부지런히 놀려 찾아가야 하는 곳. 그 이정표 끝에 영등포50플러스센터가 있었다.
40세의 나이로 퇴사 후, 몇 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배움을 전전했던 나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의 안정감을 이미 여러 번 느껴보았다. 하지만, 작가도전교실은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문학이 좋아서 매주 강의실을 찾는 사람들, 글이 좋아서 읽고 쓰며 울고 웃는 사람들, 그리고 매주 그들에게 문학과 글로 삶의 의미를 찾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선생님. 그것은 마치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문학이 주는 겹을 입고 글을 쓰는 힘으로 결계를 친 사람들의 결.
퇴직 후 등산을 즐기게 된 한 문우가 히말라야에서의 아침과 밤을 글로 보여준 적이 있다. 적어도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이름도 낯선 아마다블람 봉우리에서 긴 밤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며 아침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차디찬 밤을 견디어 맞은 새벽빛의 따스함을 그녀와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또 다른 문우는,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랜 여행을 했고, 그 긴 여정을 여러 편의 글로 옮겼다. 그 글의 마지막 편을 읽으며 난 그에게 마지막을 뛰어넘은 그 후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더욱 아름다운 여정을 만들어내길 온 마음으로 기도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나는 나보다 더 오랜 세월 인생의 서사를 쌓아온 문우들을 통해 삶을 배웠다. 50대 문우의 용기를 읽고, 60대 문우의 지혜를 얻고, 70대 문우의 희망을 응원하며 봄부터 가을을 함께 했다. 성별도, 나이도, 과거의 직업도 다른 우리는 작가도전교실 강의실 안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삶을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와도 같았으리라. 수업 후 갑자기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닥뜨린 여름날, 우산도 없이 당황하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잠시 쉬어가길 청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앉았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고, 잠시 후 비는 거짓말처럼 개었다.
“인생의 고난도 이와 같습니다. 처마 밑에서 잠시 숨 고르고 있자면 다시 볕이 듭니다. 그때 또 나아가면 됩니다.”
인생의 여우비를 알아보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 후로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우리의 앙상블을 가능하게 한 마에스트로, 선생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