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블렌딩(Tea Blending)으로 나만의 차 만들기
강동50플러스센터에 삼박한 ‘사람품학교’가 있다고 해서 탐방해 봤다. 얼그레이(Earl Grey), 히비스커스(Hibiscus), 루이보스(Rooibos), 일본 녹차 등 다양한 재료로 나만의 차를 만드는 블렌딩 프로그램이다. 지난 세월 ‘봉다리 커피’에 인이 박였을 ‘라떼’들의 오장육부에도 한 번쯤 카타르시스가 필요할 때 딱 걸렸다.
▲ 티 블렌딩으로 나만의 차 만들기. ⓒ 강동50플러스센터
지난 7월 15일 오전 10시, 비 갠 날씨 속에 시작한 차 만들기 실습은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일기일회(一期一會)’, 마음가짐이 그대로 묻어난다. 일본 다도(茶道)에서 오래전부터 이어 온 ‘이치고 이치에(いちごいちえ)’ 정신은 다회(茶會)에 임할 때는 ‘일생에 한 번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은 두 번째 강좌로 재료는 ‘히비스커스’였다. 7월 8일 첫 수업에서는 에센셜 오일로 향을 가미한 ‘얼그레이(Earl Grey)’ 차를 만들어 보았다. 두 번째 시간에 만나는 히비스커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려고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혈관과 면역력 강화 특히 눈 건강에 좋다고 하여 50+에게도 인기가 높다. 더욱이 주홍빛 ‘보혈의 피’ 같은 색깔에 새콤한 신맛으로 입안에 향이 도드라지게 한다.
▲ 선홍빛에 은은한 향이 감도는 히비스커스.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다선(茶仙) 이은선 강사의 시범에 따라 주재료인 히비스커스를 이해하고 로즈힙과 레몬그라스, 장미, 캐모마일 등의 부재료를 개별 테스팅 한 뒤 저울로 정확하게 달아 스푼으로 찻잔에 담고 타이머 작동과 함께 블렌딩 테크닉과 특유의 향을 음미하는 순이다. 이쯤 되면 침대에 이어 ‘티 블렌딩’도 과학이다.
▲ 교육 삼매경.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인스턴트 시대, 스마트 폰으로 주문만 하면 바로 문 앞에 밀키트가 배달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에 ‘차(茶)가 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처럼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기성품과 기술자들의 손에 의해 완성된 제품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DIY(Do It Yourself), 자신이 원하는 차를 스스로 만들고 음미하는 시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명상이요 마음 챙김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차 마시는 일을 하나의 예법, 다도(茶道)로까지 끌어 올렸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문화를 초월하여 문화와 배움을 주고받으며 교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료와 지역은 다르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오래된 커피의식(Ethiopian Coffee Ceremony),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 역시 커피를 대하면서 첫 잔은 ‘우애’, 둘째 잔은 ‘평화’, 셋째 잔은 ‘축복’을 기원하면서 마시는 일종의 의식이다.
공짜의 역설, 무료로 하는 교육은 비용이 없어 부담 없으나 자칫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티 블렌딩 과정은 4주 동안 진행되는 재료비(3만 원)에 해당하는 비용을 각출한다. 그래야 수다작주(隨茶作主), 차 있는 곳에 주인의식도 생기고 이른바 노쇼(no show)도 방지한다.
▲ “내 나이가 어때서! 차 만들기에 딱 좋은 나이지!” 차 만들기에 꽂힌 한병태 씨. ⓒ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지난날 지하철 현장에서의 전문 기술자로 일하면서 아직도 투쟁본능이 빠지지 않았다는 한병태(67) 배움꾼. 평일 오후에는 천주교 성당에서 재능기부 활동으로 봉사하는데 오전 시간, 집 근처에서 익은 학생들끼리 ‘티 블렌딩’ 과정이 생겨 행복을 실감한다고 한다. 강사의 설명을 차근차근 듣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고분고분 따라 하면서 어느덧 완성된 차를 탐미하고 음미할 때면 작은 희열을 넘어 명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참 좋다고 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지금까지는 만들어 준 커피와 차에 젊음을 마셨다면 이제는 직접 만들어 세월을 음미하는 ‘백견불여일작(百見不如一作)’,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만들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