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인문학을 만남
유머 인문학 강의를 취재하게 되었다. 각박하고 메마르며 사람의 정신마저 물질적 가치로 재단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유머라는 단어조차 잊고 살았다. 주말 저녁 개그 프로그램마저 폐지되고 나니 더더욱 웃을 일 없이 거칠고 딱딱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유머 인문학 강의 취재가 반가웠다.
이참에 유머를 다시 생각해본다. <영국 유머의 발달>이란 책을 쓴 프랑스의 한 영문학자가 <왜 유머는 정의할 수 없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을 정도이고 보면 유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어쩌면 너무도 다양한 나름의 정의가 있어서 하나로 정의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를 떠나 그냥 유머의 모습을 생각하자니 가장 먼저 ‘재미’와 ‘웃음’, ‘즐거움’ 따위의 단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어서 ‘반전’과 ‘여유’라는 단어에 이르러 생각이 머문다.
▲ ‘유머 인문학’ 강의실 풍경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유머에는 힘이 있다
잘 알려진 유머에는 처칠이나 링컨 같은 외국 정치인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그들이 남긴 유머를 곱씹자면 치열하고 차가운 정치판에서도 줄곧 지켜낸 긍정적 사고와 여유가 부러워진다. 그러나 정치인의 유머를 굳이 외국에서 가져오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사를 뒤적여 이야기 하나를 찾았다. 물론 같이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니 절대로 다른 의미를 두지는 말기 바란다.
국회의원 공천이나 도지사 등의 공직 제안을 번번이 거절해 인사권자를 애태운 한 인사가 청와대에 초대받아갔다. 대통령이 그를 보자 물었다.
“교회 다니지요?”
“예, 신자이긴 한데 사이비죠. 가다 말다 그럽니다.”
“어떻든 크리스천들의 세 계명이 있지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알지요?”
“예. 알긴 합니다만…”
“그럼 됐어요. 감사원장 하세요. 그럼 날마다 ‘감사’하게 되지 않겠어요?”
평소 유머와 해학을 즐기던 그 인사는 대통령의 소박한 유머에 뭐라 대꾸도 거절도 하지 못하고 감사원장이 되었다는 농담 같은 실제 이야기다.
늘 엄중하기만 할 것 같은 자리에서 이런 유머가 피어났다니 요즘 정치 현실을 보면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유머 한 마디로 대통령은 인재를 얻었고, 그 인사는 소신을 내려놓고 64세에 생애 첫 공직을 맡았다. 그러고 보니 유머에는 힘이 있다.
▲ 강의 초반 수강생들이 율동을 하며 몸풀기를 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유머는 우리를 여유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길
유머에는 사람과 사람의 삶을 어루만지고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유머 인문학, 힐링이 답이 되다.’ 두 번째 시간에 그런 힘이 느껴졌다. 유머 인문학 교실은 시작부터 쾌활했다. 강사의 음성에는 힘과 열정이 넘쳤고 수강생들은 강사를 따라 손동작과 함께 다양한 손뼉치기를 하며 몸과 마음을 풀었다. 이어서 강사가 신체 부위를 서울 각 동네 이름으로 비유하며 율동을 선보였는데 조금 어색할 수도 있는 율동을 수강생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잘 소화했다.
몸풀기를 마치자 이현용 강사가 유머의 기법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인슈타인 박사의 일화를 소개하며 유머란 우리를 여유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도구라고 정의했다. 강사가 소개한 아인슈타인의 일화는 이러하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검표원이 다가와 차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찾아도 차표는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자 아인슈타인 박사를 알아본 검표원이 괜찮으니 그만 찾으시라고 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속옷 차림이 될 때까지 옷을 벗어가며 계속 차표를 찾았다. 딱하게 여긴 검표원이 다시 한번 그만하시라고 말리자 아인슈타인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그게 아니라, 차표를 찾아야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것 아니요.”
세계적인 천재가 보여준 인간다움은 그에 대한 존경과 명성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더 따뜻함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우리의 정신 없음이 위로받는 건 작은 덤이라고 해도 좋겠다.
유머의 조건
오늘 배운 유머의 조건은 다섯 가지다. 유머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Hot, Unit, Move, Original, Real 즉 썰렁하지 않아야 하고, 연결성을 가지고 이어가야 하며, 손과 몸의 움직임을 더하여야 효과적이다. 그리고 소재의 유래 또는 출처의 원단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하고, 현실성과 실재성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야 한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려면 주변 생활 속에서 유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유머란 절대로 단시간에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한다. 끝말잇기를 하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과 부정적이고 거칠며 수동적인 어휘를 떠올리는 사람의 유머지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설명이 이 부분에 이르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언어를 돌아보게 되었다.
▲ 수강생들이 자기가 아는 유머와 이름자를 딴 삼행시를 발표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잠시 휴식을 가진 수강생들이 강사의 안내를 따라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가 아는 유머를 소개했다. 그리고 자기 이름자를 가지고 삼행시를 지어 발표했다. 수강생이 발표할 때마다 강사가 간단하게 조언하고 그와 관련한 유머를 더하며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강의 초반 다소 수동적이었던 수강생들이 강의 중반에 들면서는 적극적이고 여유 있는 표정과 자세로 서슴없이 앞에 나가 씩씩하게 발표했다. 이어서 자기만의 건배사도 돌아가며 소개했는데, 귀동냥 끝에 오는 연말에 써먹음 직한 것 하나를 기억 속에 챙겨 넣었다.
“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유머가 이끄는 삶
이현용 강사는 걸지고 정감 있는 음성과 표정 그리고 몸짓으로 내내 유머를 이어가며 쾌활하게 강의를 이끌었다. 그때마다 몇몇 수강생이 그 유머를 받아 적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후반에 들자 강의는 유머로 사는 삶에 관한 내용으로 옮아갔다.
강사는 하루에 ‘일, 십, 백, 천, 만’을 실천하며 살자고 권했다, 즉 하루에 한 번 배변, 열 번 웃기, 백자 쓰기, 천자 읽기, 만 보 걷기 그리고 ‘숫자 0’을 더하여 마음을 비우자고 권했다. 다음으로 나이 들어 사는 방법으로 Seven Up을 설명했다. 소개하자면 이렇다.
Clean Up, 몸과 복장을 늘 깨끗이!
Dress Up, 옷차림을 깔끔하고 품위 있게!
Cheer Up, 음성과 태도를 활기차게!
Shut Up, 될 수 있는 대로 입을 닫고 말을 신중하게!
Show Up, 모임 등에 빠지지 말고 자기를 많이 나타내자!
Pay Up, 할 수 있다면 밥값을 많이 내자!
Give Up, 안되는 것은 얼른 포기하자! 특히 회식 자리에서 빨리 일어서자!
▲ 이현용 강사가 ‘유머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50플러스에게 유머란?
두 시간 내내 유머가 끊이지 않는 강의장에 앉아 있자니 강사가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현용 강사는 평생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강의 제목이 그냥 유머가 아니라 ‘유머 인문학’이 된 이유에 대해 유머에는 사람이 살아야 하는 원리가 접목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로 살아온 이전의 삶과 유머를 알게 하는 지금의 삶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수강생들이 강의 주제에 능동적으로 밀착해 유머를 삶에 적용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50플러스 세대에게 유머란 무얼까요?”
“자장면의 소스와 같은 역할이지요.”
유머 인문학 강사다운 답변이었지만 그 말이 내게는 유머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소스가 덮이지 않은 자장면은 자장면이 아니지 않은가.
유머와 해학이 이루는 삶
유머 인문학 강의실에서 이날 유머와 위트로 사는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기사를 정리하며 한승헌 선생의 ‘산민객담’ 속 경구를 떠올렸다. 글을 다시 찾아 일부를 소개한다.
“흔히들 유머를 재능으로 보기 쉬우나, 오히려 인생을 관조하는 다사로운 시선과 넉넉한 마음에서 유머는 배양되고 피어난다. 인간사를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반전의 언어로 다듬어내는 것이 바로 유머요, 해학이다.”
“인간으로서 따뜻한 마음, 각박한 인간관계를 밝고 넉넉하게 해주는 친화력, 생활 속에서 배어드는 사람의 운치, 낙천적 즐거움, 답답함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정신적 여유 등을 갖추기 위하여 나는 ‘대화 속의 해학’을 권고한다.”
그러면 유머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일상의 삶 속에서 우연히 순간적으로 떠오르고 얻어지는 해학이야말로 우리의 심성과 정서를 윤택하게 해주는 영양제나 보습제가 된다. 조금만 눈여겨본다면, 우리 주변의 세상사나 자신의 체험 그 자체가 곧 해학(적)이 되는 수가 많다.”
자, 이제 조금만 눈여겨서 우리 주변과 세상사를 살피자. 그리고 해학을 건져 올리자. 그래서 우리 심성과 정서를 윤택하게 하자. 그리고 한승헌 선생이 가졌던 기대처럼 우리도 유머와 해학으로 이루어가는 세상을 꿈꾸어보자.
“인간사를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해학이 풍성해지면, 우리는 그만큼 밝고 희망찬 생활을 가꾸어나갈 수 있으며, 평화롭고 윤기가 넘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cbsann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