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이 배는 당신의 배입니다.”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대중가요가 있다. 미(未)란 아직 아니거나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인생은 정말 미완성일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 즉 인생에 대한 여러 물음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유사 이래로의 근원적 물음 중 하나이다. 인생(人生), 인생이란 무엇일까?

 

 


미지의 섬
지은이: 주제 사라마구(포루투갈, 1922~2010)
옮긴이: 송필환, 펴낸이: 조화로운 삶(2007년)

 

 

 ‘미지의 섬(o conto da liha desconhecida)’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노벨상을 받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눈먼 자들의 도시'로 잘 알려진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lamago)의 짧은 책이다. 일부 평론가 또는 독자들은 ‘미지의 섬’을 철학동화 또는 우화로 분류하며 풍자 사상과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한다.

 

 

상징 조작, 소통의 단절---

 

책은 우파 독재에 맞서 반체제운동을 했던 작가의 이력이 묻어나 듯 관료체제의 비합리성에 대한 조롱으로 시작하며 많은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상징적으로 민중에게 보여주려는 제도(우리의 신문고라고나 할까)인 ‘청원의 문’에서 청원을 하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왕이 아닌 비서관-보좌관을 거쳐 결국은 궁전의 청소부 여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통 단계를 거친다.
그나마 이런 불합리한 단계를 거쳐서도 청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민중과 지배층과의 단절, 저항, 그리고 회유와 압박. 그 시대의 흐름과 괘를 같이한다. 청원자의 집념과 민중의 바람과 요구(호의든 아니든), 지배자의 아량(?)의 산물로 빚어진 만남. 청원자(사내)의 요구는 배 한 척이었다.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설, 배 한 척.

 

배를 얻기 위한 왕과 사내의 승강이(?)에서는 인식의 한계성에 대한 오랜 논란이 보인다. “모든 섬이 지도에 있기 때문에 미지의 섬은 없다”라고 말하는 왕과, “알려진 섬만 지도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내의 주장. 존재와 인식에 대한 오랜 철학적 물음이 보인다. 그리고 그 끝은 “미지의 섬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미지의 섬은 있고, 또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내에 이르러 마침내 “인식은 존재의 반영”이라는 귀결이 보인다.
 사내는 마침내 배 한 척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도 작가의 비판정신은 여지없이 반영된다. “모든 배의 주인인 왕도 배가 없다면 쓸모 없는 존재가 되지만, 왕이 없어도 배는 존재하고 항해를 할 수 있다”라는 민중이 주인이라는 정신이---. 이로써 ‘배’는 중첩적 의미를 갖는다. 민중, 인생 그 자체, 인생의 방법 또는 수단 등.
그러나 배의 얻음(획득, 하사?)은 물음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배에 대한 왕의 주문과 사내의 요구에도 또한 철학적 의미가 내포된다. “큰 배도 아니고, 작은 배도 아니지만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는 배”라는 왕의 주문과, “키잡이와 선원은 필요없고 단지 배 한 척만 필요하다”라는 사내의 요구에서는, 인생은 어차피 자신 스스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인생의 ‘공평성’을 내포하는 듯하다.

 

 

 인생은 동반자와의 동행

 

항구에 도착해 정착한 배를 얻게 된 사내와, 항해를 전혀 모르는 사내에 대한 항무관리관의 “배를 조종할지도 모르고, 항해 경험도 없는 사내가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서는 것은 난파라는 뻔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는 숙명론이, 그러나 “항해를 하면서 항해술을 배울 것”이라는 사내의 다짐에서는 ‘운명의 숙명성과 결정론’을 일거에 깨트리는 공평성이라는 철학적 물음이 나타난다.
더불어 사내를, 배를 얻기 위한 과정을 지켜 보다 마침내 궁전 청소부의 일을 그만 두고 배를 타고 사내와 함께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 청소부에게서는 인생의 결정은 결국 자신이 한다는 공평성(독립성)이, 반면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청소부 여인의 합류라는 뜻 밖의 일, 즉 “운명은 항상 우리 바로 뒤를 따라 다닌다”라는, 사내에게 지워진 숙명적 결정론이 다시 대비되며 또 다른 물음이 계속된다.

 

이제 인생은 동반자와의 운명으로 접어든다. 사내의 의사에 반해 사내와 항해를 같이 하기로 결정한, 아니 그 배를 자신의 배라고까지 여기고 우기는 청소부 여인. 배의 곳간 열쇠를 누구에게 주어야 하느냐는 항무관리관의 말에 여인에게 주라는 사내, 열쇠를 받아 들고 배에 올라 청소하고 물건을 확인하고 둥지 튼 갈매기를 쫓아내는 여인에 이르러서는 인생은 닦아야 빛난다는 진리와, 순조로운 항해를 위한 준비와 개척 심지어 인생 자체마저도 인생의 동반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암시가 보인다.

 

 

 바다가 어두운 것은?

 

배를 타고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선 사내와 동반자인 청소부 여인. 그들 앞에는 불타는 하늘과 크고 어두운 바다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두운 바다도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 알 수 없고,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섬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섬을 떠나야만 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하루 중 일정 시간이 되어야만 바다가 어두워지는 것이지 항상 바다가 어두운 것은 아니라는 진리가 발견된다.
하늘과 바다, 바람, 구름, 그리고 배. 불확실성과 불가능. 그 앞에서 둘만의 항해는 미친 짓이라는 의식에 지배된 사내, 그러나 항해를 하든 않든 배는 이미 바다에 접해 있다. 항해를 포기하려는 사내, 달빛, 달빛에 비친 여인. 왕을 기다리는 사흘 동안 궁전의 문 사이로 보고, 말을 주고 받은 여인. 그땐 몰랐던 사실, 달빛에 의해 드러난 여인의 미모. “정말 예쁘군.” 또 다른 진리와 운명의 발견.
큰 소리를 울리며 출항하는 배 옆의 기선과 밀려오는 파도, 어두움, 잠은 인생의 험난함을, 빵과 치즈와 포도주, 마지막 걸레질로 깨끗해진 갑판, 갑판 밑의 침대는 항해를 위한 준비를 뜻하며 인생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둠을 밝히기 위한, 그러나 성냥이 없는 여자의 양초와 성냥을 가진 남자. 여인의 두 손에 쥐어진 양초, 갖고 있는 성냥에 불을 붙이고 꺼지지 않도록 손가락을 오므리는 사내. 마침내 여인의 초에 불이 붙는다.

 

 

인생은 조류를 타고

 

잠이 들고 꿈속에서 사내는 배의 타륜을 잡고 있다. 배에 가득한 선원들, 그러나 그들은 미지의 섬을 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적당히 쉴 섬과 항구, 선술집과 침대만 있다면 배에서 내리려 한다. 적당한 인생을 찾으려는 사람의 본능. 그러나 그들도 현재보다는 더 나은 인생을 찾기 위해 사내의 배를 탔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바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저 멀리 보이는 육지, 항구, 정박, 내리는 사람들. 말없이 지켜보는 사내, 배에 남겨진 흙에서 피어나는 밀과 꽃, 빛, 사내는 수확을 위해 밀밭으로 간다. 그림자, 꿈일 뿐이다. 그때 사내는 자기 옆에서 다른 그림자를 본다. 꿈에서 깨어나는 사내, 옆에 누워 있는 청소부 여인을 두 팔로 껴안고 둘은 하나가 된다. 태양은 중천에 떠 있고 마침내 배는 미지의 섬을 찾아 조류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인생은? 미지의 섬을 찾는 항해---

 

작가는 책에서 인생을 중첩적 의미로 표현한다. 인생은 배 자체이자 찾고자 하는 미지의 섬이고, 섬을 찾기 위해 하는 항해이며, 크고 넓은 바다 자체이기도 하다. 작은 돛단배일 수도, 커다란 군함 일 수도 있고, 험한 항해가 될 수도 있고 순조로울 수도 있다. 바다는 환해지기도, 어두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요란스러운 출항이든 조용하든, 꿈속이든 현실에서든 항해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바다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험난한 인생 항로이지만, 준비 안된 인생이지만, 초가 성냥을 만나 불이 켜지 듯 남과 여가 만나 사랑을 이룰 때,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고 빛나게 된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 항로에 나선 우리 모두에게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게 마련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항해하라고, 미지의 섬을 찾아 바다로 나서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떻게 살든 인생 그 자체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결코 참된 인생을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결국, 인생은 이런 게 아닐까?

왕의 철학자가 할일 없어 빈둥댈 때 청소부 여인을 찾아와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했던 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며 이런 것이 철학이라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의 섬이라는---“.

그 자체.

 

그게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