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사회에서 치열하게 진실을 찾아 고민한 카프카

 

최근 독서 모임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한 중년은, 20대 시절에 카프카의 작품들을 감명 깊게 읽고, 그때 빼곡하게 메모한 독후감 노트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가 50대 중반 들어서 카프카의 단편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카프카의 작품 속에, 20대에 보이지 않던 작가의 삶이 보인다고 얘기해 줬다. 카프카는 그의 작품에서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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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출처 : 네이버)

 

 

생전에는 작가로서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카프카가, 왜 사후에 20세기의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로 불리는 걸까?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중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작가의 메시지를 찾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카프카가 쓴 대부분 작품이 중의성(重義性), 다의성(多義性)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시대 상황과 카프카가 이야기한 나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아마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얘기로 미루어 그의 자전적인 요소들을 유추해 볼 뿐이다.

 

41살의 짧은 삶을 살다 간 소설가, 그것도 말년에는 5년여에 걸쳐 폐결핵 요양소를 드나들어야 했던 비운의 일생이었다. 전업 작가로 글을 쓴 것도 아니고, 프라하의 노동자 상해 보험 공사에 14년간 다니면서 밤에 글을 써서 작품들을 남겼으니, 그가 얼마나 맹렬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냈는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그의 삶을 바탕으로, 카프카의 단편 소설 5편에 나타난 그의 자전적인 삶의 지점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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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와 펠리체 바우어 (1917년 사진) (출처 : 네이버)

 

 

1. 선고 (1913)

 

카프카는 두 차례에 걸쳐 펠리체 바우어와 약혼과 파혼을 거듭했다. ‘선고펠리체 바우어 양을 위한 한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지녔다. 카프카가 30살인 1913년에 처음 발표되었다. 이 단편은 카프카의 삶과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를 떠올리면 다소 기괴함과 난해함이 풀린다. 실존적 자아로서 카프카의 현실과 결혼이 창작 활동에 미칠 두려움과 불안 등을 기술해서 연인에게 헌정한 것으로 보인다.

 

 

2.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1917)

 

1917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타고난 본성을 버린 덕분으로 얻어지는 소외와 고독한 실상을 그렸다.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인 카프카는 이방인(異邦人)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국적은 체코인, 육신은 유대인, 정신은 독일인의 삶이었다. 유대인의 정체성이나 유럽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삶을 자아의 출구를 찾아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 출구를 찾은 결과는 자유의 상실이고 강요된 적응이고 방황하는 경계인이었다.

 

 

3. 어느 시골 의사 (1919)

 

본질을 상실한 존재는 폐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카프카의 작품에는 현실적인 삶과 이상적인 삶,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한다. 카프카는 늘 두 삶 속에서 방황하고 고뇌한다. 주어지고 던져진 환경에서 성취하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하는 자신을 표현한다. 시골 의사의 사명감, 의사와 환자의 갈등을 통해서 소외된 자아를 발견하는 소설이다.

 

 

4. 어느 단식 광대 (1924)

 

어느 단식 광대는 카프카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의 독일어 제목도 단식 예술가였다는 걸로 미루어 카프카가 자신의 예술론을 작품에 피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카프카의 말년은 결핵으로 요양원을 드나들어야 했으며 19226월에는 퇴직했던 시점이어서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카프카는 예술에 탐닉하는 삶은 오직 죽음 속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자기의 최후를 대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 유형지에서 (1919)

 

카프카가 유형지에서를 쓴 시점은 191410월 경이다. 이때 카프카 개인의 삶과 시대도 심한 부침을 겪는다. 카프카 개인에겐 19147월 펠리체 바우어와의 2년간 교제가 약혼의 파기라는 상황을 맞았다.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런 개인과 시대 상황에서 카프카의 글쓰기는 유일한 자기 구원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카프카는 유형지에서를 통해 글쓰기의 고통을 표현하고 그것이 오로지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카프카는 독서를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표현했다. 카프카는 당시의 부조리한 삶 속에서 회사에 다니며 치열하게 진실을 찾아 글을 썼다. 4차산업의 혜택 속에 살아가는 40대들에게 이 가을, 카프카의 단편들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홍보서포터즈 이필열(pilyul11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