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문화시설지원단 현장학습, 「김환기의 파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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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그림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 그림은 거개가 작품과는 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김환기, 1960.1 「하늘」)
십수 년 하늘 영롱한 달빛과 한국적인 새와 산을 아방가르드와 현대 추상의 필치로 화폭에 담아낸 김환기 (1913~1974)에게 예술은 다름 아닌 시정신(詩精神)의 발현이자 섬세하고 함축적인 조형(造形) 언어였다.
소마미술관장 시절, 화가를 처음 만난 것은 남쪽 1004의 섬 중의 하나 안좌도(安佐島) 생가에서 였다. 그의 어머니는 색색의 무지개 빛깔로 물든 커다란 깃발들이 펄럭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몽을 어린 환기에 전하곤 했다. 세 살적 버릇도 무섭지만 어릴 적 추억은 삶의 어느 순간엔가는 묻어나기 마련일터, 환기에게 그것은 하나의 시였고 조형이었다. 덩그런 생가의 추억이 몹시도 아쉬웠던 차에 화백의 참모습을 온전히 접할 수 있었던 곳은 부암동「환기미술관」이었다. 순전히 “50+문화시설지원단”의 현장학습 덕분이었다.
인왕산 한줄기의 내력이 뻗친 이곳은 조선의 화백 겸재 정선이 50대 초에서 84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여 년 살면서 자기 거처를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로도 담았다. ‘인왕산계곡의 아늑한 집’이란 뜻이다. 어머니 대신 순전히 그의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였던 김향안(金鄕岸)여사의 꿈이 녹아든 그곳에는 김환기의 예술적 유산에 1944년 성북동 신혼의 추억을 담아 한 켠에 김환기와 김향안의 호 ‘수화’와 ‘향안’을 따서 「수향산방」을 꾸몄다.
처서가 지난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의 그랜드투어 ‘파리통신’」 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보헤미안적 속내를 감출 수 없는 김환기에게 파리는 풍부한 역사와 지성과 예술의 보고이자 로망이었다. 예술을 포함해 모든 일을 해내는 것은 역시 여자다. 1955년 5월 18일, 환기보다 1년 빠르게 파리로 떠난 부인 김향안은 소르본 대학에서 미술비평 공부에서부터 남편과의 조우를 위한 세팅을 대략 끝냈다. 산처(山妻,부인)의 파리 편지 받아든 그는 여섯 평 공방에서 보낸 시간을 “허송세월”로 단죄하고 1956년 4월부터 1959년 4월까지 4년을 파리에서 창착활동에 전념한다.
“여기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詩精神)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김환기, 1956)
▲ 「김환기의 그랜드투어 ‘파리통신’」전시 내부
인격과 배움의 완성단계로 예부터 동양에서는 “독만권서 행만리로 교만인우(讀萬券書 行萬里路 交萬人友)”를 논했고, 서양에서 그것은 그랜드 투어(Grand Tour)로 불렸다. 김환기의 삶이 그랬다. 환기미술관에서는 2021년 COVID-19, 외부세계와의 단절로 시름하는 관람객들을 위해 고맙게도 랜선으로 파리의 내음을 실시간으로 흡입할 수 있는 기발한 착상을 해 뒀다.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 불안 속에 피는 꽃이 향기가 더 진하다고 했나? 코로나 시절, 50+세대는 젊은 날의 그때보다 삶의 환경이 만만치 않게 치열하고 메말라가는 기미가 스멀스멀 시작되는 시기다. 그러기에 이전과는 다른 뉴 노멀(New Normal), 문화적 삶과 예술적인 향기, 그리고 그속에서 나만의 '카렌시아(Querencia, 안식처)'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50+세대들의 문화예술 욕구와 일거리 확장에 노력하는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 일자리 팀”이 올해 “50+문화시설지원단”이라는 적시타(timely hit)를 올렸다. 50+문화시설지원단은 2021년 서울형 참여 보람일자리 사업으로, 경험과 역량을 갖춘 50+세대 시민들에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3일(24시간)간 공통교육과 직무교육을 이수하면 약 5개월간(월 57시간 이내)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학예 및 행정지원 등 활동을 한다. 비록 8월 9일로 모집을 종료하였으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음 기회를 통해 지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가을 고독같이 쓸쓸한가? 김환기의 “그랜드 투어”는 끝났지만 「김향안, 파리의 추억」은 연말까지 달린다. 여사의 독백처럼 “생각하는 시간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도시 생활에서 조용히 숲속을 거닐면서 얻어지는 사색의 세계” 그처럼 정다운 너와 나라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