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국 미국의 시대가 열렸다.
1차 2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도 치렀다.
현대 미술사를 살펴보면서 미술작품 속에 담긴 시대상을 마주한다. 
시대의 가치를 교감하고, 역사가 주는 의미를 살펴본다. 


                                                                                      
                                                                   미술 전문 변호사(미국)     김형진 강사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법학, 건축, 미술을 제외하면 모든 부문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미술사에서 설치미술가 박남준 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가 없다.
국내시장이 보장된 미술가들은 베끼기만 해도
현상 유지를 해온 것이 현실이다.
2000년 이후 세계적으로 수백 가지 화풍이 등장했지만,
우리나라는 30년간 단색화만 그려오고 있다. 미술계 독과점이랄 수도 있어 아쉽다.

 

 

<독가스 마스크를 쓴 군인들의 분노> 1924년, 오토 딕스

 

1차 세계대전 후, 오토 딕스는 비참한 사회를 그려냈다.
독일 화가 오토 딕스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전쟁의 참상을 화폭에 남겼다.
1937년 나치가 열었던 '퇴폐미술전'에는 딕스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었다.
딕스는 2차 세계대전 후, 종교적 주제로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싱 하는 소녀> <발레복 꿰매는 소녀> 1921년, 에드워드 호퍼

 

소녀의 삶이 고달파 보이고 정적인 화면이 우울해 보인다.
발레복 꿰매는 소녀 뒷모습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 미국인의 관음증을 엿볼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화가다.
그는 부유하게 살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화폭에 담긴 사람들 모습은 호퍼 자신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르다.
그가 그림 속 사람들의 삶을 어느 정도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은 그의 그림을 마주하면서 미국적인 정서를 교감했다.
호퍼는 미국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화가다.

 

 

 

<밤의 사람들 (Nighthawks)>1942년, 에드워드 호퍼(1882-1967)

 

밤새도록 여는 서정적인 찻집 분위기가 으스스 한 빛으로 그려졌다.
사람과 물건을 공간 속에 고립시키는 호퍼만의 독특한 빛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가라앉은 분위기, 지쳐 보이는 미국 사람들에게서 고독함이 묻어난다.
호퍼는 1960, 1970년대 팝 아트와 신사실주의 미술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공산당 포스터

 

미국인의 영웅, 찰스 린드버그


1927년 5월 20일, 찰스 린드버그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t. Louis)’ 호를 타고,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파리를

향해 출발, 비행을 시작한 지 36시간 후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살아 있는 미국인 가운데 어느 누구도(작고한 사람 가운데서도 에이브러햄 링컨

말고는 아무도) 린드버그만큼 진정한 '미국인의 영웅'으로 군림한 적은 없었다.
전후 시대 배경과 유구한 역사가 부족한 미국이란 나라는 영웅이 필요했다.

 

 

타임지에 실린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영웅에게 뜻밖에 일어난 아들 유괴사건도 유명했다.
1932년 3월, 생후 20개월 된 그의 아들 찰스 주니어가 유괴되었고, 
린드버그는 범인의 요구대로 몸값 5만 달러를 지불했으나 아이는 죽은 채로 발견

되었다.
1936년 범인 브루노 하우프트만(1899~1936)은 아이 유괴 살해 죄로 전기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사회에서는 반(反) 외국인 감정으로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음모론이 떠돌았던

사건이었다.

 

 

<아메리카 고딕> 1930, 그랜트 우드(1891-1942)

 

이 작품은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우드는 아이오와 남부 작은 마을 엘돈에 있는 고딕 첨탑 하얀 집을 배경으로
여동생 낸과 전담 치과의사이자 친구인 맥키비 박사를 모델로 그렸다.
그림 속 남자는 농부인 듯 건초용 갈퀴를 들고 있다.
손으로 세워 들고 있는 갈퀴가 방어적인 자세를 강조시킨다.
옆을 바라보는 여자의 시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긴 목 부분  곱슬하게 삐져나온 머리카락과 목 부분 브로치는 엄격하게 억눌린

관능을 암시한다.
겉보기에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풍부한 시각적 반향들로 가득한 작품이다.
이 그림이 미국 중서부 지방의 보수적 가치를 풍자한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정작 작가 본인은 이런 주장을 부인했다.
진의는 제목만큼이나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작품 <아메리칸 고딕>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미지 중 하나다.

 

 

<레닌> 1930, 이삭 브로드스키(Isaak Brodsky 1884~1939)

 

Isaak Izrailevich Brodsky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 운동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그는 소련, 유태인 화가다.
레닌의 상징적 묘사, 러시아 남북전쟁, 볼셰비키 혁명 등을 신중하고 섬세하게 그렸다.

레닌은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후계자, 국제 노동운동 지도자, 러시아 공산당 및 소비에트 연방

국가 창설자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전개 전망과 그 후 발전을 제시했다.
그는 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을 발전시키는 데에 뜻을 두었고,
그의 철학은 노동자 계급과 새로운 시대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방침

으로 되었다.

 

 

일본 포스터 2장

 

일본은 당시 문맹률이 높아, 포스터를 많이 사용했다.
포스터에는 오족협화의 대동아 공영권 이데올로기가 담겼다.
오족협화(五族協和)는 일본이 만주국을 건국할 때 이념이다.
5족은 일본일, 한족, 조선인, 만주족, 몽고인을 말하며,
만주국은 1932~1945년 일본이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에 세운 국가다.

친일 만주국 등장은 식민치하에서 조국을 등지고
만주(둥베이)에 근거지를 삼은 200만 명 교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만주에서 한국 독립운동도 큰 타격을 받았고, 무장 독립군은 최후의 거점을 상실하게

된다.

 

 

<디트로이트 인더스트리(Detroit Industry)>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중 일부분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해골로 표현된 멕시코 원주민의 전통적 주술적 형상을 통해
고대 멕시코를 지배했던 원주민 문화를 새롭게 자각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 의해 지배당했던 멕시코 민족 고통을 주요 작품 대상으로 표현

하고자 했지만,
당시 불안정했던 멕시코 정세와 민중 고통에 대한 디에고 인식은 피상적이었다.
1906년 주지사 장학금으로 에스파냐로 갔으며, 다음 해 예술 중심인 파리로 옮겼다.
유럽 거장들 작품을 통해 미술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갖는 계기가 되었다.

 

 

 

<꽃을 나르는 사람> 디에고 리베라 

 

<디트로이트 인더스트리(Detroit Industry)>와 <꽃을 나르는 사람> 2장의 그림은 
미국 자동차 산업도시 디트로이트의 첨단 기계산업과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멕시코 노동자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디에고는 1910년 귀국, 멕시코혁명을 직접 겪게 되지만
대다수 민중처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경제·사회적 혁명을 지향했던 농민·노동자들이 오히려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무력

진압되고,
 부르주아 지배체제에 종속 편입된다. 혁명시키고자 했던 주체세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멕시코 혁명은 신 질서를 구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 이전 구 질서를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치장하고 강화시키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진행된 듯하다.
승자에게는 '합법적인 독재' 시스템 구축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1920년대 미국 대공황이 오기전, 호황이던 시절 모습. 부흥회 장면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 5월 1일 개관했다.
미국 대공황 시기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건물 내 사무 공간 대부분은 임대되지

못하고 텅 빈 상태였다.
건물에 '엠프티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별명이 붙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힌덴부르크 비행선 폭발

 

가장 커다란 비행선이었던 힌덴부르크호는
1937년 5월 6일  승객과 승무원 100여 명을 태우고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기착지인 뉴저지주 레이크 허스트(Lakehurst) 해군 비행장에 착륙 준비를 하며
고도를 유지하고 있던 오후 7시 10분쯤, 비행선 뒤쪽에서 폭발음과 함께 수소가스

주머니가 파열, 비행선은 불길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36명이 숨졌다.
이후, 세계적인 추세였던 비행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비행기가 등장하게 된다.

 

 

미국 대공황 시 30대 엄마와 아이들 사진

 

1929년 주가 폭락 사태에서 비롯된 미국 경제 공황이
단기간에 전 세계로 확대, 광범위한 경기 침체 원인이 지속된 사상 최대 세계경제 공황이다.
미국은 유럽 제국에 채무이행을 촉구, 1931~1933년 사이 공황은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대공황으로 인하여 각국은 자본주의 자동적 회복력을 상실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치명타를 맞아 혼란을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자국 통화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미국은 경제기조를 자유방임에서 정부간섭으로 전환했고,
케인즈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세계경제공황은 1930년대 후반부터 기세가 꺾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군수물자 생산이 늘어나면서 끝났다.

 


*이 글은 8월 10일 도심권50+센터 열린학교 '미술로 보는 세계역사' 6강 중 일부분 모니터링한

내용이다.

 

 

                                                                             모더레이터      박옥주